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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일에_관한_규정_16장_1-34절 [2023/10/30 10:11] – [본문의 청중 (발제자: 김영우)] 211.181.171.254 | 속죄일에_관한_규정_16장_1-34절 [2023/12/05 23:13] (현재) – [본문분석 - 의식의 세부적인 지침(16:11-28) [발제자 : 이주복, 황현철]] 218.50.173.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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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향연’으로 증거궤 위 ‘캅포레트’를 가리는 이유를 가리켜 그 발판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0.)) 또한, 향연을 연관시키는 본문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하틀리는 여호와를 향한 분향의 효력은 민수기 16:43-50에 언급된 고라의 반역 사건과 본문의 내용을 연결한다.((John E. Hartley/김경열 옮김, 『레위기』 WBC 4 (서울: 솔로몬, 2006), 507-508.)) | 이처럼 ‘향연’으로 증거궤 위 ‘캅포레트’를 가리는 이유를 가리켜 그 발판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많은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0.)) 또한, 향연을 연관시키는 본문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하틀리는 여호와를 향한 분향의 효력은 민수기 16:43-50에 언급된 고라의 반역 사건과 본문의 내용을 연결한다.((John E. Hartley/김경열 옮김, 『레위기』 WBC 4 (서울: 솔로몬, 2006), 507-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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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서 여호와의 진노는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항해 촉발되었으며 온 회중에게 임하는 듯했으나 아론은 급히 향로를 취해 거기에 제단에서 가져온 불을 놓고 그 불 위에 향을 피웠다. 이어서 그는 재빨리 백성들을 위한 대속을 시행하려고 회중 안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분향과 향기라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뜻을 함의하며,((Mark F. Roooker/차주엽 옮김, 『NAC 레위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8), 105-106.)) 이는 마치 노아의 제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노아의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이환진, 『레위기Ⅱ』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13), 316.)) 이는 예언서에도 전제되어 있는 내용으로써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는 데 목적을 두며, 레위기 16장에서 언급되는 ‘향연’은 이러한 이해가 담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사건에서 여호와의 진노는 고라와 그의 가족들을 항해 촉발되었으며 온 회중에게 임하는 듯했으나 아론은 급히 향로를 취해 거기에 제단에서 가져온 불을 놓고 그 불 위에 향을 피웠다. 이어서 그는 재빨리 백성들을 위한 대속을 시행하려고 회중 안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분향과 향기라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뜻을 함의하며,((Mark F. Roooker/차주엽 옮김, 『NAC 레위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8), 105-106.)) 이는 마치 노아의 제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노아의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의도가 전제되어 있다.((김상기, 『레위기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13), 316.)) 이는 예언서에도 전제되어 있는 내용으로써 제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는 데 목적을 두며, 레위기 16장에서 언급되는 ‘향연’은 이러한 이해가 담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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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고든 웬함과 이환진은 이를 시내 산 현현 사건의 제의적 재현이라고 주장하며, 향연을 피워 죽음을 피하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출애굽기 19장과 연결짓는데, 여호와의 임재와 그 앞에서 자신을 감추는 대제사장이라는 속죄일의 독특한 맥락에서 볼 때 이들의 견해 또한, 타당해 보인다.((Gordon J. Wenham/김귀탁 옮김, 『레위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258.)) 이와 같은 분향의 과정을 마친 후에 아론은 카포레트 앞에 수소의 피를 손가락으로 일곱 번 뿌려야 했는데 그 이유는 7은 완전 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성소에 피를 가져가 뿌리는 것은 속죄일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며 오직 속죄일에만 지성소에 피를 가져가는 것은 속죄일의 엄숙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Mark F. Roooker, 『NAC 레위기』, 273.)) | 다음으로, 고든 웬함과 김상기는 이를 시내 산 현현 사건의 제의적 재현이라고 주장하며, 향연을 피워 죽음을 피하는 대제사장의 모습을 출애굽기 19장과 연결짓는데, 여호와의 임재와 그 앞에서 자신을 감추는 대제사장이라는 속죄일의 독특한 맥락에서 볼 때 이들의 견해 또한, 타당해 보인다.((Gordon J. Wenham/김귀탁 옮김, 『레위기』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258.)) 이와 같은 분향의 과정을 마친 후에 아론은 카포레트 앞에 수소의 피를 손가락으로 일곱 번 뿌려야 했는데 그 이유는 7은 완전 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성소에 피를 가져가 뿌리는 것은 속죄일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며 오직 속죄일에만 지성소에 피를 가져가는 것은 속죄일의 엄숙함을 강조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Mark F. Roooker, 『NAC 레위기』,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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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지성소 안에서 이뤄지는 지성소와 회막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속죄 (16:15-19)** | ** 3. 지성소 안에서 이뤄지는 지성소와 회막과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속죄 (16:15-19)** |
18절의 “제단”은 바깥 제단이다.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란 표현은 8장 15절의 표현을 상기시키며, 이 의식이 제단을 다시 바치기 위한 것임을 암시한다. 대제사장이 피를 뿌림으로써 제단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레위기에서 8:15과 16:19에만 등장하는 표현이다.((John E. Hartley, 『레위기』, 509-510.)) 그렇다면, 어떠한 신학적인 의도가 여기에 숨어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도는 속죄일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는데, 8:11, 15와 16:18-19의 구조를 비교하며 속죄일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하는 키우치의 견해가 앞선 필자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견해로 보인다. | 18절의 “제단”은 바깥 제단이다.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란 표현은 8장 15절의 표현을 상기시키며, 이 의식이 제단을 다시 바치기 위한 것임을 암시한다. 대제사장이 피를 뿌림으로써 제단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레위기에서 8:15과 16:19에만 등장하는 표현이다.((John E. Hartley, 『레위기』, 509-510.)) 그렇다면, 어떠한 신학적인 의도가 여기에 숨어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도는 속죄일의 특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는데, 8:11, 15와 16:18-19의 구조를 비교하며 속죄일의 거룩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하는 키우치의 견해가 앞선 필자의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견해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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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치에 의하면, 8장과 16장은 번제단을 정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의식 사이에는 순서의 역전이 발생한다. 우선, 8장에서 언급되는 제사장의 위임식에서는 번제단에 기름을 뿌린 후에(8:11) 수송아지의 피를 뿌린다(8:15). 그러나 16장에서는 먼저 피를 바른 후에 피를 뿌린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4.)) 그러므로, 이와 같은 순서의 역전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속죄’가 재생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16;18-19에서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한 속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들의 깨끗함과 거룩함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깨끗함과 거룩함을 함축하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요구할 것이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과 그 가운데 있는 성막의 관계는 <백성의 죄> → <성막 오염> → <성막의 정화와 거룩함> → <백성의 정화와 거룩함과 그에 상응하는 삶의 요청>이라는 일종의 순환 관계라고 할 수 있고, 완전한 속죄는 지성소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환진, 『레위기Ⅱ』, 319-320.)) | 키우치에 의하면, 8장과 16장은 번제단을 정화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의식 사이에는 순서의 역전이 발생한다. 우선, 8장에서 언급되는 제사장의 위임식에서는 번제단에 기름을 뿌린 후에(8:11) 수송아지의 피를 뿌린다(8:15). 그러나 16장에서는 먼저 피를 바른 후에 피를 뿌린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4.)) 그러므로, 이와 같은 순서의 역전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속죄’가 재생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16;18-19에서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한 속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들의 깨끗함과 거룩함은 곧 이스라엘 백성의 깨끗함과 거룩함을 함축하고 그에 부합하는 삶을 요구할 것이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과 그 가운데 있는 성막의 관계는 <백성의 죄> → <성막 오염> → <성막의 정화와 거룩함> → <백성의 정화와 거룩함과 그에 상응하는 삶의 요청>이라는 일종의 순환 관계라고 할 수 있고, 완전한 속죄는 지성소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김상기, 『레위기Ⅰ』, 319-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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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사셀 염소에 대한 세부 규례 (16:20-22)** | ** 4. 아사셀 염소에 대한 세부 규례 (16:20-22)** |
대제사장 아론은 속죄일 의례를 마친 후에 세마포 옷을 벗고, 물로 자기 몸을 씻고, 더 화려한 의복을 입는다. 아론이 목욕 후에 거룩한 세마포 옷에서 자신의 일상적인 옷으로 갈아입는 것에 대해서는 하틀리의 “거룩함의 제거”로 해석하지만,((John E. Hartley, 『레위기』, 511-512.)) 키우치의 “부정함의 정화”가 더 나은 견해로 보인다. 방금까지 가장 거룩한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어떠한 이유에서 부정하게 되었는가? 오염의 근거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함으로부터 더 낮은 수준의 거룩함으로 이동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7.)) | 대제사장 아론은 속죄일 의례를 마친 후에 세마포 옷을 벗고, 물로 자기 몸을 씻고, 더 화려한 의복을 입는다. 아론이 목욕 후에 거룩한 세마포 옷에서 자신의 일상적인 옷으로 갈아입는 것에 대해서는 하틀리의 “거룩함의 제거”로 해석하지만,((John E. Hartley, 『레위기』, 511-512.)) 키우치의 “부정함의 정화”가 더 나은 견해로 보인다. 방금까지 가장 거룩한 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어떠한 이유에서 부정하게 되었는가? 오염의 근거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거룩함으로부터 더 낮은 수준의 거룩함으로 이동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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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의 이동은 곧 자기를 숨기는 것, 부정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되는데 구약의 본문에서 스스로를 숨기는 것(‘하타트’)은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죄’로 간주되며 곧 부정한 것의 정화와 관련이 된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더 낮은 거룩으로 이동하는 아론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기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부정해지며 이를 정화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씻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나실인이 자신의 서원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속죄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민 6:14), 이환진 또한, 키우치와 같은 견해를 보이기 때문에 이 견해는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이환진, 『레위기Ⅱ』, 324.)) | 거룩함의 이동은 곧 자기를 숨기는 것, 부정하게 되는 것과 관련이 되는데 구약의 본문에서 스스로를 숨기는 것(‘하타트’)은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죄’로 간주되며 곧 부정한 것의 정화와 관련이 된다.((Nobuyoshi Kiuchi, 『레위기』, 39.))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더 낮은 거룩으로 이동하는 아론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기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부정해지며 이를 정화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씻는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나실인이 자신의 서원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속죄제물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민 6:14), 이환진 또한, 키우치와 같은 견해를 보이기 때문에 이 견해는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김상기, 『레위기Ⅰ』, 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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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론과 백성을 위한 번제 (16:24b-25)** | ** 6. 아론과 백성을 위한 번제 (16:24b-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