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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고대근동문학:전쟁_보고문:성경본문과의_유사성_및_차이점 [2024/05/13 03:13] 함형진_22024고대근동문학:전쟁_보고문:성경본문과의_유사성_및_차이점 [2024/05/13 09:46] (현재) 211.178.20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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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유사성과 차이점은 두 문화권의 기록 방식과 목적, 신앙적 배경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고대 역사를 연구할 때 각기 다른 출처를 비교하며 보다 넓은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론적 접근이다.  이러한 유사성과 차이점은 두 문화권의 기록 방식과 목적, 신앙적 배경이 어떻게 역사적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기록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고대 역사를 연구할 때 각기 다른 출처를 비교하며 보다 넓은 관점에서 사건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론적 접근이다. 
  
 +=== 함형진 ===
  
 +열왕기하 본문과 산헤립의 본문은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열왕기하 A기사는 산헤립 전쟁보고문 결말과 비슷하지만, B기사부터는 완전히 상황이 역전되고 있다. 역대기에서 나오는 c기사는 더 나아가 히스기야의 영웅적 면모를 두각한다. 이런 점에서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 역사)는 두 번의 침략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두 번의 침략은 지금 보기에 뚜렷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는다. 
  
 +삼국지 게임을 하다가도 대군을 이끌고 남방을 정벌할 때,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하물며 고대 전쟁에서 대군을 한번 더 일으켰다는 것은 산헤립의 정치적 생명과, 혹은 바벨론과 같은 패권의 전쟁이 아닌 이상 이해가 되기 어렵다. 남유다는 아쉽게도 패권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만약 한 번의 침략이었다면, 산헤립의 침공은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다. 왜 예루살렘을 포위만 하고 침략하지 않았는가? 적어도 히스기야의 항복을 받았다면, 왕권 교체를 왜 하지 않았는가? 등등 이러한 의문에 헤이즈는 남유다와의 관계에서 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례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왕 히스기야를 강력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이례적인 표현이다. 물론 본인의 업적을 높이기 위해 적국의 왕을 높이는 것은 흔하지만, 앗수르 입장에서 예루살렘 남유다는 매우 작은 나라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를 강력한 왕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그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과 혹은 친밀한 관계임을 암시한다. 또한 헤이즈는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남유다는 701년 이후 다시 봉신 관계가 되며 므낫세의 통치 기간에는 우호 관계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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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산헤립의 최후는 비참했다.  아슈르 신은 앗수르를 저버렸지만, 야훼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훼가 승리했다. 이것만으로도 열왕기하의 기록물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고대의 역사 기록은 팩트의 기록으로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교차 검증이 되는 본문은 매우 귀하고, 연구 가치가 충분하다. 교차 검증에도 불구하고 변형되고, 과장되는 이야기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각 이익이 되는 입장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와 산헤립의 내용이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은 (바친 공물의 수, 예루살렘 포위, 물러감) 엄청난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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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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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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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종의 이유로 히스기야가 앗수르에 대항하여 이집트와 군사적 동맹을 맺으려 했다는 점과 그것이 산헤립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점, 산헤립이 이집트의 지원군을 부수고, 히스기야의 뉘우침과 막대한 조공을 거둔 점, 그것이 모자랐는지 다시 돌아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46개의 지역을 점령한 점, 마지막으로 귀환 후 아들에게 살해 당한 점이 성서 문헌과 고대 전쟁 보고문의 유사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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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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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 성서는 전쟁 보고문에 나오지 않은 185,000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죽음과 패배자처럼 좌절하여 돌아가는 산헤립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죽음까지 이어진다. 구약 성서는 산헤립의 죽음의 앞뒤로 야훼 하나님의 손길을 묘사한다. 히스기야의 정직함을 받아, 하나님을 모욕하는 산헤립을 치는 이스라엘의 야훼이다. 가히 그것은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역대하 20:15)'을 보여주는 듯하다.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숨 막히게 포위했음에도, 남유다를 정복하지 못한 점과 히스기야를 살려둔 점, 막강한 왕 산헤립이 돌아가서 아들에게 죽은 점은 의문으로 남겨졌다.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해석한 것이다. 고대 문헌과 성서 문헌의 비교는 성서 문헌의 해석을 신학적으로 다양한 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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