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페르시아 제국과 성서 ===== ==== 유다의 멸망과 포로기 ==== 유다는 기원전 587년 느부갓네살의 신바벨론제국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당하여 멸망하고 만다. 이후 유다인의 운명은 크게 세가지 길로 갈라지게 된다. 첫째는 애굽으로 망명한 이들이다. 이들은 시드기야 왕 시대 친애굽파에 속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 예레미야 또한 이들에게 이끌려 이집트로 가 거기에서 또한 예언자의 사명을 다하다가(렘 43:6-7)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편, 이 곳으로 넘어간 유대인들에 대한 간접적인 기록은 엘레판틴 파피루스(Elephantine Papyri)에 남아 있다. 이 문서는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때에 작성된 것이지만, 바벨론 시대 때부터 유대인들이 이주해 살고 있었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게하는 문서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있다. 이 곳에 끌려간 유대인들은 대개 엘리트 층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바벨론 땅의 촌락들에 강제이주 되었다(겔3:15 델아빕). 이 곳의 포로민들이 페르시아 시대 때, 유다로 귀환하여 다시 회복된 유다와 예루살렘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신학적으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남은 자’라 여긴다. 마지막으로 본토 남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평민 이하 하층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옛 북이스라엘 지역의 사마리아인들이나, 그 밖의 에돔 등과 같은 이방인들이 혼재되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포로기 동안 예루살렘은 성벽도 없이 매우 황폐화되었고, 치안 또한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에 페르시아 시대 때 바벨론에서 귀한한 유대인들과 마찰을 빗게 되는데, 결국 이들은 새로 회복되는 유다의 재건에 동참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사마리아인들은 이에 분노하여 자신들의 진정한 성소라 여겼던 그리심산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 포로기 동안 중요한 신학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성전의 파괴 이후 토라가 집대성 되면서 성전 중심의 종교에서 말씀의 중심의 종교로이 변화이다. 물론 나중에 스룹바벨에 의해 제2차 성전이 재건되기는 하지만 말씀을 배우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회당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성전의 파괴와 다윗 왕조의 몰락, 그리고 포로의 경험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을 ‘보편적인 유일신’으로 다시금 인식하게 하는 관점이 나타나게 된다. 비록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지만, 이들이 거하는 곳에서 말씀을 순종할 때, 그 곳이 성전과 같은 곳이 되고, 비록 다윗 왕조는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이방왕들을 제어함으로 이 땅을 통치해 나가심을 증언하고 있다. ==== 페르시아 제국의 도래 ==== {{ https://biblia.co.il/wp-content/uploads/2023/03/Screenshot-2023-03-18-at-7.19.00-PM.png }} 고대 이란 지역에서 초창기 가장 발전된 나라는 바로 엘람이었다. 후에 이 지역은 다시 앗수르와 메데(678-550)에 의해 지배를 당하게 되다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550-330)가 이 지역에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나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 정벌되어 셀루커스 왕조가 이 자리를 차지한 이후(312-63), 파르티아(247 BCE-224 CE)와 사산조(224-651)가 차례로 들어선다. 사산조는 기원 후 7세기 무슬림 아랍 세력이 이 지역의 패권을 쥐기 전 마지막 페르시아 왕조였다. 이 지역에 기원전 3천년경 전부터 아리아인이 이주하여 산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조로아스터교 경전 아베스타에서 언급되는데, 인도-이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들은 이원론과 불을 숭배한느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이 섬기던 만신전에서 가장 높은 신은 아후라 마스다 신이었다. 기원전 1500-1000년 사이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는 아후라 마스다의 계시를 직접 받았다고 주장했고, 정의와 질서의 신과 이 신의 대적자인 앙그라 마인유라는 불화와 반목의 신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끝없는 싸움 가운데 인간은 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음을 가르쳤다. 페르시아인들은 기원전 1천년경 부터 이란 고원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메데는 기원전 8세기 엑바타나에 그들의 국가를 세웠고, 페르시아인들 또한 기원전 8세기 말에 아케메네스 왕 치하에서 안산에 수도를 두고 바히타리 산맥의 중서부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엘람은 이미 그 위치에 국가를 건설한지 이미 오래였다. 기원전 7세기 무렵까지 메데가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었고 페르시아는 작은 봉신 국가에 불과했으나 기원전 612년 앗수르 제국이 무너지면서 지형도가 뒤바뀌게 된다. 메데는 메데의 왕 아스티게아스 왕의 손자인 고레스 2세(혹은 고레스 대왕 550-530)에 의해 몰락하고 만다. 고레스 왕은 이후 아케메네스 제국을 창업하게 된다. 이후 540년과 539년에 엘람과 바벨론을 점령함으로 이 지역의 패권자가 된다. 성서로 눈을 돌려보면 이러한 고레스의 귀환 정착은 성서에서 매우 유의미하게 다루어짐을 알 수 있다. === 페르시아 제국의 주요 수도 === * 바벨론 (행정 수도) * 파사르가데 (고레스의 첫 수도, 고레스의 무덤이 위치해 있음) * 엑바타나 (과거 메데의 수도, 고레스, 여름 궁전) * 수사 (과거 엘람의 수도, 캄비세스 2세 때 주요 수도 가운데 하나로 성장. 다리우스 때 대규모 건설, 왕실의 주거처이자 겨울궁전) * 페르세폴리스 (의례가 이루어지는 수도, 다리우스가 수사와 함께 대규모 건설) === 아케메네스 왕조의 주요 왕들 === * 키루스/고레스 대왕(559-530) - 페르시아 제국의 창업자. 피지배민족에 대한 유화 정책. * 캄비세스 2세 (530-522) - 이집트 정복. 반란 진압 도중 사망. * 바르디야 (522) - 캄비세스 2세의 동생. 캄비세스 2세에게 살해당함. 바르디야를 따르는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무산됨. * 다리우스 1세/다리오 (522-486) * 페르시아 시대의 전성기를 이룸. 반란세력을 진압하고 이에 대한 기록을 [[https://www.wikiwand.com/en/Behistun_Inscription|베히스툰 비문]]에 남김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XzetIWHc4k|다큐 영상]] ). * 지중해의 상권과 패권을 장악하고자 그리스까지 침공하려 했으나 그리스 원정은 실패로 끝남(마라톤 전투). * 왕의 대로 정비 (수사-사르디. 2703km). 역참제를 통해 빠른 통신 체계 정비 (에스더서 참고) * 페르세폴리스 건설 - 조로아스터교의 중심 *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 (486-465) * 피정복 국가에 대한 강압정책 * 그리스 정복 시도 -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함으로 그리스에 영향력 상실 *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다가 큰 아들과 함께 암살당함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 아닥사스다 (465-424) * 마지막 전성기 *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고 그리스와 평화협정 (헤로도토스의 활동) * 이 왕의 죽음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는 급격히 몰락. ==== 성서에 나타난 페르시아 제국 ==== {{ wiki:return.png }} 성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입장은 매우 긍정적이다. 일례로 고레스 왕의 포로민 귀환 정책에 대해 성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역대하 26:21-23) 성서는 고레스가 선포한 칙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방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방식으로 다윗 왕조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 가운데 이루어 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고레스 칙령의 내용을 담고 있는 고레스 실린더는 성서의 내용과는 달리 이방신들의 이름을 넣어 그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https://www.worldhistory.org/article/166/the-cyrus-cylinder/|고레스 실린더의 내용]] 고레스는 피지배민족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목표로 하여 그의 정책을 펴고자 했음을 볼 수 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앞선 두 제국, 앗수르와 바벨론과는 달리 피지배민족에게 유화정책을 폈으며, 그들의 법과 제도를 알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로민들이 다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가 그들만의 종교와 법을 재건하는 것을 허락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고 법, 즉 토라를 선포하는 모습을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니라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스 6:13-15) >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느 8:5-8) 물론 이러한 유대인들의 성전과 법의 회복은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많은 방해와 간섭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재건하고 토라를 집대성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성전과 토라는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적인 두 축을 이루었다. 한편, 페르시아 시대의 배경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성서의 책 에스더서는 유대로 귀환하지 않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의 영토에서 경험했던 위기 상항을 서술하고 있다. 에스더서에서는(히브리어 버전) 유대인들의 어떤 종교성도 서술되어 있지 않다. 이는 성전이 있는 땅으로 돌아가지 않은 유대인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민족적인 정체성을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앞으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경험하게될 반유대주의(혹은 안티세미티즘)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