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단계별로 구분하고 각 시대 가운데 알아야 할 중요한 흐름을 제시해 볼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주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뉘어 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기원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다. 창세기 12장에서 우르 출신의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의 삶의 무대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옮겨진다. 아브라함의 삶의 여정 가운데 중요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위의 주요한 사건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정체성과 역할을 정의하는 사건이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 이스라엘은 부름받은 백성으로서 다른 민족에게 복을 전해야 하는 목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족장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의 태동기이자 준비기라 할 수 있다. 이후 아브라함의 후계는 ‘선택’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의 계보를 이어가게 된다.
이러한 ‘선택’의 개념은 누가 약속의 땅에 남는 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선택 받지 못함’은 구원의 역사에서 배제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끝까지 남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여전히 온 세계를 향해 있다.
그러나 족장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은 아직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가족이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다. 이제 요셉을 통해 그 역사의 무대는 이집트로 옮겨간다.
요셉은 이집트로 넘어가 총리대신이 되었다. 이후 야곱의 모든 가족들이 이집트로 이주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집트으로의 이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집트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환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가족을 민족으로 성장시킬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7,000km를 넘게 흐르고 있는 이집트의 나일강은 이집트의 항구적인 수원이 된다. 오늘날에도 이집트의 도시들은 이 나일강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환경 요인은 폐쇄적인 이집트의 지형이다. 육로로 이집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당히 비좁은 통로를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지형은 주변이 열려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대비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볼 때 지배세력이 계속해서 바뀌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달리 이집트는 안정적으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은 민족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출애굽기 초반부에서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변화는 아래와 같다.
이스라엘은 민족으로의 성장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준비는 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역사하셨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광야로 나서게 된다. 광야의 역사는 출애굽 1세대와 2세대의 역사로 나누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다. 이 시대의 중요한 초점은 ‘거룩’과 ‘구별’이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 거룩하고 구별된 민족이 되어야 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율법을 통해 언약의 성격도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적 언약관계는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출애굽 1세대는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부정적인 정탐꾼들의 보고에 귀를 기울여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가야 했다. 40년의 시간이 흘러 출애굽 2세대, 즉 광야 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기 전, 이들은 하나님과 다시 언약을 갱신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 언약이다.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광야의 중요한 교훈은 바로 ‘만나를 통해 살리시는 하나님’이다. 즉, 이 땅의 풍요는 다른 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약속의 땅에 도달한 이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함을 강조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하여 약속의 땅을 정복하게 된다.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의 특징은 크게 아래와 같이 규정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정복 전쟁을 통해 땅을 점령하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파들 가운데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가 있다. 이 지파는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또 한번 더 구별된 지파이다. 레위 지파의 의무는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겠지만 레위 지파는 이들 가운데에서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통해 거룩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
사사시대는 왕정 시대가 도래하기 전, 사사라는 과도기적인 통치체제를 유지했던 시대이다. 비록 혼란스러운 시대이기는 했지만, 국가의 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마다 사사를 세워 나라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망각하였고, 무엇보다 레위인들의 타락으로 인해 사사시대는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왕국 시대는 왕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시대이다. 사무엘서에서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다소 부정적으로 비춰진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드러나고 있는 이상적인 통치 구조에 있어서 궁극적인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셨고 왕의 거룩성을 지키기 위해 예언자를 세워 주셨다. 타국의 예언자가 친왕조적인 예언을 주로 했다면 이스라엘의 참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왕들에 대한 비판까지도 해야 했다. 즉, 성서에서의 왕국시대를 특징짓는 중요한 역할은 왕 자체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에 있었다.
왕국 시대는 크게 아래와 같이 다시 나뉘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사후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다가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앗수르에게, 남유다는 기원전 587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왕정이 몰락하게 된 것은 종교적인 타락과 사회적인 불의로 인한 것이라 증언하고 있다. 왕국시대에는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으나 이스라엘과 유다의 위정자들은 이를 듣지 않았고, 결국 몰락의 길로 나아갔다. 왕국시대의 몰락 이후 다시는 다윗 왕조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왕조를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성전 파괴는 유다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의 종교적인 패러다임이 크게 변화하게 된다.
앗수르에 멸망 했던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기원전 721년 이후 그 자취를 거의 감추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앗수르의 강제 이주 정책과 혼혈 정책으로 인해 북이스라엘은 소위 이방인들과 혼혈인들로 구성된 ‘사마리아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앗수르와 유사하게 강제 이주 정책을 단행 하였지만 바벨론은 유다 포로들을 함께 정착하게 하였기 때문에 바벨론의 몰락 이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도시와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유다는 계속해서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영향하에 놓이게 된다.
이 시기 생겨난 중요한 변화는 바로 토라의 집대성이다. 이를 통해 성전 중심의 종교에서 말씀 중심의 종교로 변화하는 기틀이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