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신의 개입

24-04-27 김경식 작성

메사 왕 (Mesha)

기원전 9세기에 모압을 통치했던 왕으로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대략 876-837)의 치하에 있었던 모압을 독립적인 지위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메사는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조에게 조공을 바쳤지만, '아합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에 배반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메사 왕이 남긴 메사 석비(대략 835년1))에 따르면 오므리의 아들(아합 왕?)의 때에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어, 성서와 모압의 기록이 다르게 나타남을 볼 수 있다.2) 혹자는 오므리의 아들을 '오므리의 자손'과 같이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튼 메사 왕은 고대 모압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남긴 석비는 당시 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고증하고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모스 (Chemosh)

메사 석비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그모스 신은 고대 모압의 주신이다. 그모스라는 이름(𐤊𐤌𐤔 kmš)은 아마도 '정복자'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그모스 신이 군사적인 능력과 관련된 신이라는 사실을 추측케 한다. 그리고 이 신은 고대 가나안 종교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쉬타르(Ishtar)에 해당하는 사랑과 전쟁의 여신 아스다롯(Astarte)의 배우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나안 종교에서 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아스다롯의 배우자는 '바알'이다.3)

성서에서 그모스 신은 꽤 여러 번 언급된다4). 이 중에 흥미로운 것은 사사기의 입다의 이야기에서이다. 이스라엘과 모압 사이에서 벌어진 영토 분쟁을 입다는 외교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네 신 그모스가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사사기 11:24)

물론 입다의 이런 입장이 그모스 신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교묘한 수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의 계획은 '완료형', 그리고 그모스의 계획은 '미완료형' 동사로 달리 표현함으로 그모스 신의 실제적인 역사성에 대해 매우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다.5)

아무튼 그모스신은 성서에서 여러 번 언급될 정도로 고대 이스라엘에게도 아주 잘 알려진 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메사 석비 (Mesha Stele)

대략 기원전 835년에 만들어졌다고 여겨지는 이 석비는 메사가 북이스라엘에 대항하여 벌였던 전쟁을 기술하고 있다. 이 석비 내용의 번역과 일반적인 소개 내용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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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사 석비와 열왕기상 3장

고대의 역사 기록은 FACT인가?

고대 역사 기록은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사실로서의 역사'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최근 학자들 '사실로서의 역사' 개념은 19세기 이후 서구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이전까지의 역사 기록의 방향성은 특정한 과거 사건에 대한 '해석'이었다고 보고 있다.7) 따라서 어떤 역사 기록을 전달함에 있어서 역사가 자신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서술되는 사건들이 선별되거나, 때로는 현재의 독자들의 입장에서 “과장” 혹은 “변형”으로 여겨질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사실 관계 그 자체 보다도 그 사건에 대한 해석과 메시지였을 것이다.

두 기록의 역사 서술 상에 나타나는 공통점과 차이점

1) 공통점: 모압은 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봉신 국가(vassal state)였다가 오므리 왕조 시대 어느 시점에 반란 전쟁을 일으켰다.

(열왕기하 3장)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메사비문) 1 나는 메사, 그모스의 아들 [  ] 모압의 왕이며, 디 2본 사람이다 …  4 … 오므 5 리는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랫동안 모압을 압제했다. 왜냐하면 그모스가 자신의 땅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6 그리고 그의 아들이 뒤를 이었고 그 역시 ‘나는 모압을 압제하겠노라’ 말했다. 내 시대에 그가 그[렇게] 말했다. 7 나는 (흐믓하게) 그와 그의 집을 바라 보았다(וארא). 이스라엘은 완전히 파괴되었다(אבד אבד). 영원히(עלם). 오므리는 그 [땅]을 소유했다. 

2) 차이점: 두 기록은 각기 자신이 섬기는 신(하나님/그모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전쟁을 치루었다고 주장한다.

(열왕기상 3장) 18-19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메사비문) 9행, 33행 그모스가 그것을 나의 날에 회복케 했다

지도상으로 이스라엘과 모압이 점령한 각 지역들을 대조해 보면 아래와 같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모압 북쪽 지역 아르논 강 이북 지역들은 메사 비문에서 언급되는 도시들이 속해 있다. 반면 열왕기하 13장에 언급된 길하레셋은 그 이남 지역, 즉 에돔 지역과의 경계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지리적인 요소들과 성서, 그리고 메사 비문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아래와 같은 “어느 정도의 역사적 사실”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오므리 왕조 때(기원전 9세기)에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던 봉신 국가였다. 그러나 오므리 후손 중 어느 왕의 때에(아마도 여호람) 메사 왕이 반란 전쟁을 일으켰다. 메사 왕은 아르논 강 이북 지역 대부분을 점령하고, 많은 요새들을 세웠다. 이에 이스라엘 왕은 유다와 에돔의 왕들과 연합을 구성하여, 에돔을 통해 남쪽 지역에서 침공해 들어갔고 길하레셋 지역(아마도 그 일대)을 점령하는 등, 남쪽 지역에서 모압에 대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더 이상 북쪽으로 진격하지 못하고 퇴각했다.

두 본문이 각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두 본문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해석의 방향성은 국가의 성패는 바로 신의 개입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신 중심의 역사 해석은 두 본문의 서두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메사 비문은 위에서 인용한 4행에서 볼 수 있듯이 오랫 동안 이스라엘이 모압을 지배했던 이유는 바로 모압의 군사적인 열세가 아니라 모압의 신 그모스가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신의 나라에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이 자신의 나라에 분노한 결과 다른 민족에게 패배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자신들의 신이 약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메사는 자신의 땅에 등을 돌렸던 그모스 신이 자신의 날에 자신을 위해 싸우기 시작했음을 말하고 있다.

계속해서 메사 비문은 이 전쟁이 함축하고 있는 종교적인 의미를 계속해서 강조한다. 특히 성서 학자들이 주된 관심을 갖는 부분은 바로 17행과 18행이다.

(메사비문) 17 … 아쉬타르-그모스에게 내가 그것을 바쳤다(םרח). 그리고 내가 18 야훼의 [기]구들을 가져다가 그모스 앞에 두었다 … 

위 17행에서 “바쳤다”로 번역한 모압어의 어근은 חרם인데, 이 용어는 동일한 전쟁의 맥락에서 성서에서 종종 등장한다(민21:2-3; 수10:37). 이 단어는 흔히 “멸절시키다”라고 번역되고 있는데, 학계에서 많은 논쟁 거리가 되고 있는 헤렘(חֶרֶם) 사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여기서 이 어근은 전쟁에서 희생시킨 적들을 자신들의 신에게 드리는 제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비문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일컫는 신성 사문자가(יהוה) 뚜렷하게 남아 있다. 야훼의 기구들을 탈취해서 그모스 앞에 두었다는 기록은 그모스가 야훼보다 우월한 신임을 강조하는 종교적인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다.

메사 왕이 이러한 승리의 기록을 통해 강조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메사 비문은 먼저 전쟁을 그모스 중심으로 ‘신학화’시킴으로 모든 전쟁의 과정은 그모스의 섭리에 의해서 벌어졌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비문은 단순히 그모스 신의 위대함만을 말하려는 모압 버전의 “성서”가 아니다. 사실상 이 비문의 주인공은 “메사 자신”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인용했듯이 비문의 1행에서 메사는 스스로를 “그모스의 아들”(אנך משע בן כמש)이라 규정함으로 그모스가 언제나 자신의 편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왕 중심의 이데올로기는 또한 메사 비문 문체 그 자체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 비문은 1인칭 시점(“나”)으로 작성되어 있다. 1인칭 시점은 화자의 권위를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인 문체라고 볼 수 있다. 성서 기록과 달리 메사 비문은 그모스 신에 대한 언급 외에, 자신이 점령한 수많은 지역들을 거론하고 있다. 즉, 다양한 군사적인 업적들을 늘어놓음으로 메사 왕 자신의 영향력이 확대 되었음을 나타내고자 하고 있다. 결국 그모스 신의 보호를 받는 모압 왕의 군사적 능력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메사 비문의 주된 목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성서의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먼저 열왕기하 3장은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왕인 여호람의 등극 기록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성서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열왕기하 3장)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람은 다른 여느 오므리 왕조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종교적으로) 악한 왕이었다. 즉, 메사 비문과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은 성서의 전쟁 이야기의 주인공은 왕이 아니며, 왕 역시 하나님에 의해 버림 받거나 비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메사 비문 역시 그모스 신이 자신들의 땅에 분노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왕을 비판하는 언급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메사 비문에서 그모스 신은 언제까지나 왕의 편이다.

메사 비문의 기록이 화자인 왕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는 1인칭의 문체로 작성되어 있다면 성서 기록은 3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는 등장인물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왕하3:10에서 이스라엘 왕은 심지어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고, 야훼가 자신을 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핵심적인 인물이 11절 이하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는 선지자 엘리사이다.

(열왕기하 3장) 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와줄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는 왕이 아니라 예언자를 통해 선포되고 있다. 즉, 성서 역사의 핵심적인 인물은 정치적인 지도자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예언자들이다. 사실, 보다 넓은 맥락에서 볼 때 열왕기하 3장의 이야기는 엘리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포함하고 있는 엘리사 싸이클(cycle)의 일부이다. 즉,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유다, 에돔 왕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엘리사의 예언자로서의 역할과 하나님의 예언이 엘리사를 통해 정말로 실현되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열왕기하 3장의 전쟁 기록은 이스라엘, 유다, 에돔 연합군이 모압 남쪽 지역에서 엘리사의 예언과 같이 큰 승리를 거두었음을 말하고는 있지만, 마지막 부분이 석연치 않다. 엘리사의 예언처럼 이들은 “모든 아름다운 성읍”(19절)을 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엘리사의 예언이 틀렸던 것일까? 마지막 구절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열왕기하 3:27)

인신제사는 성서 전통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다(레18:21; 왕하16:3; 렘32:35; 미6:7). 하지만 모압 왕의 이러한 행동은 이스라엘 군에게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서에서 “격노”(קצף)라는 단어는 신적인 분노를 의미하는데, 이 구절에서는 정확히 어떤 신의 격노함이 임했는지 정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주석가들은 이 대목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리적인 공포를 의미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 모압 신의 공포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격노함이 함께 연합했던 유다와 에돔이 아닌, “이스라엘에게만” 임했다는 것이다. 결국 3장 초반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이스라엘 왕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종교적 믿음이 끊이지 않았고, 엘리사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모압 왕의 인신 제사 앞에 두려워 떨면서 진군을 포기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유다, 에돔이 부분적인 승리만을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스스로 엘리사의 예언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까닭이었던 것이다.

1)
크리스토퍼 헤이즈, 『고대 근동문헌과 구약 성경』, 373.
2)
역사 기록의 객관성에 대한 아래 내용 참고
3)
성경에서는 아스다롯과 아세라를 혼용하는 듯한 언급이 나타난다
5)
김경식, “입다 내러티브의 두 전쟁 보고문(삿 11:19-22; 11:12-40)에 대한 문학 분석― 하나님은 왜 입다의 전쟁에 개입하셨는가?”, 37-38
7)
Joshua A. Berman, Inconsistency in the Torah: Ancient Literary Convention and the Limits of Source Criticism, (Oxford, Univ., 2017), pp.2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