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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과의 유사성 및 차이점

유종현

히스기야의 재위 기간을, Edwin R. Thiele와 William F. Albright가 715/6-686/7, Robb Andrew Young이 725–696, Gershon Galil은 726–697/6으로 산정함으로써 차이가 나타난다. 1)

교재에서와 같이 살만에셀의 사마리아 침공 연도를 727년으로 규정하고, 히스기야 재위 기간에 대한 Robb Andrew Young과 Gershon Galil의 주장을 따른다면, 히스기야 통치 4년에 사마리아가 살만에셀에 의해 포위당하고 3년 후에 함락되었다고 기록(왕하 18:9-10)한 성경의 연대기는 신바벨로니아 연대기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사르곤이 앗수르의 왕위를 차지한 연도를 722년이라고 볼 때(교재 p.405), 이는 살만에셀에 의해 시작된 사마리아 공격이 3년간 계속되어 사르곤 왕때 북 이스라엘이 최종 멸망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내용과 신바벨론 왕의 연대기가 일치하지 않는 점도 발견되는데, 왕하 18:13에 기록된 히스기야 14년과 산헤립 왕에 관한 것이다. 산헤립 왕이 통치를 시작한 때인 705년2)은 히스기야 14년(약 710년 정도)보다 뒤의 일이기에 산헤립이 히스기야 14년에 유다에 올라와 각 성읍을 점령했다는 내용은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앗수르의 고위 관리인 랍사게의 비방(사 36:18-20, 왕하 18:33-35, 대하 32:13-15)과 유다 왕 히스기야의 기도(사 37:18, 왕하 19:17)로부터 역사적으로 앗수르 왕들이 많은 나라를 점령했고 각 나라의 신들은 자기들의 민족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해내지 못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놀라운 히스기야의 고백을 통해, 이방 신들은 단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일 뿐이므로 그것들을 신으로 섬긴 이방 나라들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유다가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받은 것은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것을 천하만국에 증명하는 것임을 (이사야 37:19-20, 왕하 19:18-19) 강조한다. 유다는 여호와께서 약속한 승리를 거두었고, 앗수르 왕은 패퇴하여 본국으로 돌아간 후 자신이 섬기는 신인 니스록 신전에서 경배할 때 아들들에 의해 살해당했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강대국 앗수르의 신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사 37: 36-38, 왕하 19:35-37) 산헤립의 연대기와 관련된 테일러 프리즘3) 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내 권위에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의 견고한 성읍 사십육 개와 작은 성읍들을 에워싸서 함락시키고 내 공성퇴로 말미암아 빼앗았다....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200,150명의 사람과 말과 노새와 당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을 약탈하였다. 히스기야에 대해서는 새장의 새처럼 예루살렘에 가두어 두었다. 
그런 다음 나는 그 주위에 일련의 요새를 건설하고 누구도 성문에서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점령한 그의 도시들은 아스돗의 왕 미틴티와 에크론의 통치자 파디, 가자의 왕 실리벨에게 주었다.

프리즘에는 히스기야가 바친 조공이 언급되어 있지만 산헤립이 예루살렘 성을 점령했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4) 그리고 그는 유다 원정에서 앗수르로 돌아간 후 20여 년이 지나 살해되었는데 그 기간에 다시 유다를 침공한 일은 없었다.5)

결국 성경이 역사를 통해 조명하는 바는, 하나님은 이방을 포함한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전 우주적 유일신이고 그에 의해 창조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용시온

신-바빌론 연대기, 신-앗수르 명조 명부, 그리고 성서의 열왕기는 공통적으로 왕의 이름과 통치 기간 등을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대 근동의 국가 역사를 추적하고 계산할 수 있는 1차적 자료를 제공한다. 교재에서 제시된 사례는 정치 및 군사적 사건이 주를 이루지만, 바벨로니아의 다른 연대기는 왕의 장례 장소, 아키투 절기 준수, 심지어 상품의 시장 가격을 언급하기도 한다.6) 특히 앗수르의 명조 명부에는 명조와 함께 그 해의 특이한 사건이나 천문학적 현상들이 같이 기록된 사례가 있어 절대연대를 산정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7)

그러나 바빌론 및 앗수르의 문헌과는 달리 성서에는 이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울과 다윗, 솔로몬의 통치 기사는 사무엘기 전체와 열왕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메소포타미아의 어떤 문헌보다 많은 세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복잡성과 내러티브의 예술성도 굉장히 독특하다. 예를 들어 왕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 이전까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8)는 다른 연대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를 제공하며, 군주의 한해 수입을 보고9)하고 있는 고대의 유일한 문서는 열왕기서뿐이다.10)

또한 성서에는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없는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신학적 관점도 발견할 수 있다. 바빌론을 함락시켰던 고레스 왕에 대한 서술에서도 이러한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11)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12)

그(나보니두스)는 자신의 계획으로 모든 신들의 왕인 마르둑에 대한 예배를 폐했다.
그는 계속해서 마르둑의 도시에 악을 행했다. 매일,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하고 그들을 쉼 없이 돌렸다.  

13)

성서에서는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도록 한 사건을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킨 사건으로 기록하며, 이에 고레스를 메시아의 예표로까지 해석한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 고레스는 분명 자신을 마르둑이 선택한 구속자로 선전하였다. 바빌로니아의 전통과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명분 하에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 바빌론의 멸망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바빌론의 제사장과 학자들은 마르둑이 아닌 달신 난나를 섬겼던 나보니두스에 대한 마르둑의 심판으로 여겼지만, 성서의 기자들은 끊임없이 악을 행하고 교만하였던 바빌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예언의 성취로 바라본 것이다.

이는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 꾸준히 신화화된 여러 존재를 다루며 도시와 제국의 역사마다 다른 신들을 섬겨왔던 것에 비해, 성서에서는 하나님 외의 다른 신적 존재에 대해서 철저히 경계하고 비신화하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누리던 역사뿐만이 아니라 패배와 좌절의 역사 속에서도 변함없이 유일신 여호와에 대한 믿음과 열방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는 것이 메소포타미아 문헌과 성서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서강희

고대근동 연대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이는 성서 기록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성서에서 언급되는 여러 사건들이나 인물들은 이러한 연대기의 역사적 배경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문헌 기록을 통해 주변 국가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성서에 나타난 주요정책과, 사회 문화적인 이해를 위해 이 연대기들의 정보가 중요하다.

고대 근동 연대기 문헌은 특정 왕조나 국가의 역사를 기록하고 강조한다. 이는 주로 권력의 유지와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왕의 권위를 강화하고 통치를 정당화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왕의 업적, 왕국의 확장, 전쟁의 결과, 건축물의 건설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했다. 제국의 입장에서 쓰여졌기에 왕들의 영광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정왕의 업적, 군사, 승리, 건축 프로젝트 등을 기록하였고 역사적 사실에 중점을 두며,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때때로 과장된 표현과 왕의 권위를 높이는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보여진다.

이 문헌들은 신화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 목적은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권위를 증명 하는데 있다. 또한, 신들과 왕들간의 관계, 신화적인 충돌, 신이나 왕의 영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서의 경우는 하나님의 은혜와 신앙의 이야기,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 선지자의 메시지 등을 포함한 종교적, 역사적 이야기와 하나님의 계획과 인간의 관계를 기록과 함께 전달하는 것이 목적 이었다.

성서는 신화적인 요소를 포함하지만, 사람들의 신앙과 도덕적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한 비유로 사용되어지고, 하나님의 힘과 영광을 강조하는 데에만 사용되어진다.

성서 기록의 주요 목적은 신앙, 도덕, 인간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제공하는 것이 고대근동의 그것과는 다른점이다.

고대근동에는 다양한 명칭을 가진 예언자들이 활동하였다. 주전 20세기 경 유프라데스강 유역에 위치했던 마리왕국에서는 “아필루/아필투”(āpilu/āpiltu, 대답하는 자)와14) “무후/무후투”(muḫḫû/muḫḫūtu, 황홀경에 빠진 자) 15), “아시누”(assinnu, 일종의 제의 인도자) 16), 그 의미가 불분명한 “카마툼”(qammātum) 17), 그리고 “나부”(nabû)가 예언자로서 신의 메시지를 전하였다. 특별히 “나부”는 마리문서에 한 번만 등장하는데(ARM 26 216), 어원학적으로 구약의 예언자 “나비”(nābî’)와 유사점이 있다.18)

앗시리아 예언들의 주요 대상은 왕들이고, 내용또한 왕에게 호의적인 구원선포임을 착안해, 신앗시리아의 예언을 “왕의 예언” 혹은 “왕을 향한 예언”(Königsorakel)으로 규정하였다. 왕의 예언은 주로 왕에게 선포되는데, 왕권의 안정에 대한 신의 약속, 왕의 안녕, 국내외의 대적들로부터의 안전, 그리고 왕조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예언이다. 19)

사무엘하 7장 본문의 나단의 신탁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신앗시리아 왕의 예언과 유사하면서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고 있다.

나단의 신탁에서 나단은 예루살렘의 성전과 다윗 왕조의 합법성을 정당화하는 선포를 포함한다. 나단은 신탁을 통해 왕의 안녕과 왕조의 지속을 강조, 이러한 관점에서 다윗의 후손들에게 나단의 신탁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0)

예를 들면, 솔로몬의 시대에는 다윗과 맺은 약속의 결실 이라는 관점에서 왕국의 기반을 다지고 솔로몬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단의 신탁이 인용되었을 것이다. 왕조, 선택, 그리고 성전 건축에 대한 나단의 신탁은 솔로몬 파의 왕정 이념의 기초를 세우고 그 이념을 운용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21) 그들은 솔로몬이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왕이자 백성들에 의해 왕위 계승자로 정당화하기 위해 나단의 신탁을 사용했을 것이다.22)

나단의 신탁은 왕권의 정당성과 재가가 필요한 경우 인용되었을 것이다. 또한 왕들이 다윗 왕의 전례를 따라가지 못하고 하나님과 다윗 왕 사이에 맺었던 계약을 어길 경우, 나단의 신탁은 왕들이 규범에 따라 행동하지 못했음을 비판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55) 그러나 반대로, 왕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는 그로 하여금 다윗 왕에게 약속했던 안전과 신의 보호를 기억나게 함으로서 그를 격려하기 위해 나단의 신탁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고대 근동 문헌과 성서에 예언의 역할은 왕들의 안위와 영광을 드러낸다. 왕권의 권위를 강화하고 그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유사하나 성서의 예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선포되어지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역사를 다루는 관점에서 이 둘은 비슷해 보이나. 성서는 그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백성의 신앙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고대근동 문헌들은 주로 역사적인 사실에 중점을 두고 공식적인 언어와 형식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성서는 상징적인 언어, 예언적 요소의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 역사 서사, 시편, 비유 등의 다양한 문학적 장르를 통해 하나님의 교훈과 가르침,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가 강조되었다.

고대근동 문헌과 성서는 유사하나 서로 다른 관점과 표현으로 다른 이데올로기와 목적을 표현하였다.

김요셉

고대근동 연대기와 성서(특별히 열왕기서) 모두, 연대기 서술 방식에 있어 혈통(또는 자손, 가문)에 대한 세부 사항을 밝히며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이는 나라 또는 왕에 대한 기록이 객관적인 측면을 통하여 그 정당성을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앗수르의 림무 기록에 의하면 매 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까지 기록함으로 역사적인 사실로서의 기록에 대한 근거를 더욱 뒷받침 함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고대근동 문헌 및 성서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와 더불어 상호 간의 비교를 통하여 정확한 연대와 사건의 정황을 밝혀내는 지표로서 사용되어진다.

그러나, 고대근동의 연대기 문서와의 성서의 기술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 관점의 차이이다. 고대근동의 연대기 문서의 서술에 있어서 연대기를 기록한 역사가의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지만(객관적인 사실에 있어서 전쟁패배의 기록 유무에 따라 역사가의 주관이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성서와 달리 왕에 대한 업적이나, 재위기간, 전쟁 기록 등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내용을 위주로 서술 되었다. 이와 반대로, 성서에서는 왕의 업적과 전쟁사뿐 아니라 왕의 내면에 대한 서술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적인 관점에 근거한 평가가 서술되어 있다.

즉, 고대근동 연대기 문서가 성서에 비해 군대의 이동이나 전쟁의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기록이 풍부한데 비해, 성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왕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주관적 평가와 더불어 전쟁 전후 맥락에 대한 인과관계에 대해 하나님의 인과응보라는 역사가의 평가가 서술되어 있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

6)
크리스토퍼 B. 헤이즈/임요한 역, 『고대 근동 문헌과 구약성경』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8), 410.
7)
임철, 『역사적, 문예적, 성경신학적 이해를 통한 열왕기서 설교』 (서울:총신대학교, 2008) 95.
8)
사무엘상17장-사무엘하24장
9)
열왕기상 10:14-25
10)
Allan, R. Millard, “Does the Bible Exaggerate King Solomon’s Golden Wealth?” BAR 15.3(1989): 21-29.
11)
이사야 44:28
12)
역대하 36:22-23
13)
Mordechai Cogan, on W. W. Hallo, ed., The Context of Scripture (Leiden: E. J. Brill, 2000), volume 2, p.315.
14)
CAD A/2: 162-64.
15)
CAD M/1: 115-16.
16)
CAD A/2: 341-42.
17)
Cf. CAD Q: 2.
18)
“나비”에 대한 어원학적 연구는 D. E. Fleming, “The Etymological Origins of the Hebrew nābî’: The One Who Invokes God,”CBQ 55 (1993): 217-24와 John Huhnengard, “On the Etymology and Meaning of Hebrew nābî’,” EI 26 (1999): 88-93을 참조하라.
19)
Manfred Weippert, “‘Ich bin Jahwe’–‘Ich bin Ištar von Arbela: Deuterojesaja im Lichte der neuassyrischen Prophetie,” in Prophetie und Psalmen: Festschrift für Klaus Seybold zum 65. Geburtstag (ed. B. Huwyler et al.; AOAT 280; Münster: Ugarit-Verlag, 2001)
20)
G. von Rad, “The Royal Ritual in Judah,” The Problem of the Hexateuch and Other Essays (Edꠓinburgh: Oliver, 1996), 221-32.
21)
Mettinger, “Cui Bono,” 207-10을 참조하라.
22)
기브온 산당의 꿈 이야기(왕상 3:4-15)의 목적은 나단의 신탁의 것과 유사하다. 꿈 이야기는 다윗을 향한 나단의 신탁이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서 성취되었음을 보여줌으로서 솔로몬의 왕권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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