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종교와 문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 불리는 고대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이며, 그 역사는 기원전 3150년경부터 시작된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크게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 초기왕정: 기원전 3150년-2686년
- 고왕국: 기원전 2686-2181년
- 중왕국: 기원전 2134-1690년
- 신왕국: 기원전 1549-1078년
- 후기시대: 기원전 664년-332년
- 프톨레미왕조(그리스): 기원전 332년-기원후 30년
- 로마: 30년 이후
이집트의 기원
이집트를 존재케 한 것은 역시 '나일강'이다. 나일강은 1년 내내 농경에 필요한 풍부한 물을 공급해 주었던 안정적인 수원이었으며, 이른 시기부터 나일강을 중심으로 정착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으로 인해 땅은 해마다 영양분을 새롭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기 위한 측량 기술과, 범람하고 난 이후에 땅을 재분배 하기 위해 면적을 계산하는 기하학, 그리고 효과적인 농사를 위한 관개 기술등이 일찍부터 발전하였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농경의 발전과 도시의 성장은 사회 계급체제를 이루기 시작했고 이는 또한 왕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사회 질서가 복잡해지고 다변화됨에 따라 왕을 중심으로 한 효율적인 행정 체제가 조직되었으며, 서기관들과 종교 지도자들 또한 등장하게 되었다. 여느 고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종교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 왔다. 특히 농업에서는 물과 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태양, 달, 하늘 등 천체를 관장하는 신들에 대한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또한 삶, 죽음, 부활, 정의 등과 같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영역을 주관하시는 신들도 중요하게 섬겨졌다.
이집트의 나일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간다. 대부분의 큰 강들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가는 것과는 반대된다. 고대 이집트는 초기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남쪽 나일강 상류 지역을 상이집트, 그리고 북쪽 나일강 하류 지역을 하이집트라 불렀다. 이 두 왕조는 점진적으로 통합되어 초기 왕조시대를 이루어 발전해 나가게 된다.
(붉은 관/Deshret 하이집트, 흰색 관/Hedjet 상이집트, 이중 관/Pschent 통합, 청색 관/Khepresh 전쟁시)
이집트라는 이름은 사실 본래적인 이름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Kemet”이라 불렀는데, 이는 '검은 땅'을 의미했다. 이 이름은 나일강이 범람하고 난 이후의 기름진 땅을 나타낸다. 그리고 주변 셈계통의 나라들에서는 '미츠루'(miṣru)라고 불렀다(*이 표기 방식의 기원은 불분명). 특이하게도 히브리어로는 '미츠라임'(מצריים)이라는 쌍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히브리인들이 이집트가 두 왕국이 합쳐져 있음을 알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듯하다.
오늘날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집트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아이귐포스(Αἴγυπτος)에서 기원한 것인데, 이 명칭은 멤피스의 창조신인 Ptah가 숭배되었던 도시의 이름 '하우트-카-프타흐' (Hwt-ka-Ptah, 즉 ‘Ptah의 집’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었다고 추정된다.
이집트의 신화
고대 이집트의 정치, 사회와 문화 등은 강력한 종교적 기반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집트 신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집트 신들의 목록(영국 박물관)
우주관
이집트의 우주 질서를 가리키는 개념은 바로 '마아트'(ma'at)이다. 마아트는 혼돈으로부터 세상을 구별해 낸 수단이 되며 인간과 세상의 운행을 주관하는 힘이 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 이 마아트를 주관하는 이는 바로 파라오였다.
전통적인 이집트 신앙에 있어 세상의 질서가 만들어지기 전에 혼돈의 바다가 존재했다. 이 태초의 바다는 Nun 신으로 표상된다. 그리고 땅은 Geb 신으로 표현된다. 땅은 평평하고 하늘/궁창에 의해 태초의 바다와 땅이 분리된다. 하늘은 Nut 신으로 표상되었고, 궁창, 즉 공기는 Shu 신으로 섬겨졌다.
태양신은 Ra 이다. 태양은 하늘을 순환하는데 Nut 신의 몸을 따라 움직이며, 밤에는 Duat으로 불리는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그리고 태양이 다시 하늘로 떠오르게 되는데, 이러한 천체의 흐름을 통해 이집트인들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되었으며, 순환하는 천체의 흐름은 시간 개념에도 영향을 미쳐, 같은 주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시간관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패턴을 주관하는 것 또한 마아트에 의해서였다.
창조(헬리오폴리스 창조 신화)
세계 창조 이전에는 태초의 바다(Nun)신이 있었다. 태양을 상징하며 창조와 관련된 신은 Atum신이다(Ra가 아침, 정오의 태앙이라면, Atum은 저녁의 태양, Atum-Re 라고 통합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함). 이 신은 스스로의 의지로 창조되었으며, 태초의 언덕이라 여겨지는 Benben 석(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 돌) 위에서 스스로 잉태하여 공기의 신 Shu와 습기와 이슬의 여신 Tefnut를 창조했다. 이집트 신화에서 창조의 과정은 '분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땅의 신 Geb(남신)와 하늘의 신 Nut 여신(태초의 물 Nun과의 경계, 소)이 창조된다.
일반적으로 하늘의 신은 남성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땅의 신은 여성의 이미지를 갖는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땅은 풍요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경우는 이와 같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집트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하 세계의 왕 Osiris, 이집트의 왕좌를 상징하는 Isis 여신, 혼돈의 신 Set, Isis의 자매인 Nephthys가 창조된다. 그리고 Osiris와 Isis 사이에서 Horus가 탄생한다(아래 Osiris 신화 참고)
이 외에도 멤피스 창조신화가 있는데 이 신화에서는 Ptah가 모든 신들과 만물을 창조한 신으로 등장한다. 프타는 이 신화에서 마음과 말을 통해 창조 행위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Ptah에게서 만들어진 신은 Ptah의 형상으로 지어졌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집트의 창조 신화에서는 물, 태양, 언덕(Benben석. 태초의 물 위에서 솟은 피라미드 모양의 돌) 등의 세 가지 요소가 항상 함께 등장한다. 이집트에서 매년 계속에는 홍수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 물로 인해 작물이 자라난다. 태초의 언덕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티프는 바로 창조의 처음 상태를 의미한다.
*이집트 창조 신화에 나타나는 아홉 신(Ennead). 고대 이집트에서 9는 3의 배수로 완전한 수를 의미함. 위 왼쪽에서부터 Atum, Tefnut, Nut(엎드린 자세), Shu(Nut를 받치고 있음), Geb(누워 있음) 아래 왼쪽으로부터 Osiris(녹색은 죽음을 의미), Isis, Seth, Nephthys
호루스 신
Osiris 신화
Osiris 신화는 이집트의 통치 체제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신화이다. Osiris는 풍요와 왕권을 주관하는 신인데 그의 형제 Set에게 죽임을 장하게 된다. Osiris의 아내이자 누이인 Isis는 Nephthys와 Anubis 등과 같은 저승신의 도움을 받아 찢겨진 남편의 몸을 이어 붙여 다시 온전하게 만들어 잠시 부활을 시키고,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 Osiris의 후계자 Horus를 잉태하게 된다. 그리고 Horus는 장성한 뒤에 Set과 왕위를 둘러싼 경쟁을 하게 되고 신들은 Horus의 손을 들어줌으로 Horus가 이집트의 정당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이러한 신화의 맥락에서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을 Horus의 현신이라 여겼다. 특히 호루스의 눈은 Set과의 싸움에서 눈을 하나 잃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 눈은 Thoth 혹은 Hathor에 의해 치유되어 회복된다. Horus의 눈은 이집트 문화에서 생명과 안녕을 상징하게 된다.
유일신 종교개혁
이집트 18왕조의 왕이었던 아케나텐(Akhenaten, 1353-1336)그의 재위 6년에 당시 수도였던 테베를 버리고 새로운 수도인 아케나텐(El Amarna)를 건립했다. 이 도시는 태양신인 Aten(태양 광선)을 숭배하는 곳이었으며, 다른 신상들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정책을 단행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테베의 최고신인 Amun-Ra에 대한 모든 흔적을 없애려 하였다. 아톤-빛은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수백만가지의 형태들(태양의 광선)을 창조한” 유일한 신이다. 새로운 종교는 강력한 왕정 이데올로기로 특징지어졌다. 아케나톤은 아톤의 아들이었고, 신을 잘 알고 있었던 유일한 자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개혁은 후계자에(투탄카멘) 의해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케나텐의 유일신 주의 개혁은 고대근동 역사 최초의 유일신 개혁 운동이었다.
성서와 이집트 (출애굽)
바로의 완고함
성서와 이집트 종교와의 관계성에 대해 출애굽 모티프에 집중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출애굽 과정은 모세와 바로의 협상으로부터 시작하는데,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성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가 가도록 허락하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출애굽기 3:19-20)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출애굽기 7:3-4)
위와 같은 구절들은 바로가 순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먹은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라 설명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원어 표현을 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וַאֲנִי אַקְשֶׁה אֶת־לֵב פַּרְעֹה
위 구절의 표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가 파라오의 심장(마음)을 단단하게 할 것이다.”가 된다. 이는 이집트의 고대 문헌 '사자의 서'에서 죽은 자가 심판을 받는 장면을 상기시킨다. 죽은 자는 마아트 앞에 서게 되고, 저승의 신 아누비스는 마아트의 저울에 한쪽에는 사자의 심장, 그리고 다른 편 저울에는 진리의 깃털을 놓는다. 만일 두 무게가 동일하다면 사후세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심장쪽으로 기운다면 암무트라는 짐승이 심장을 먹어 치워, 죽은 자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파라오의 단단해진 심장은 자신이 섬기는 이집트 신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악한 존재가 되었다는 조롱과 동시에, 히브리인들을 억압한 대가로 인간의 고유한 자유의지가 하나님에 의해 박탈당해 버렸음을 의미한다. '완고함'이 곧 하나님의 처벌이며, 바로의 이런 마음으로 인해 애굽이 10가지 재앙을 그대로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10가지 재앙과 이집트의 신들
그리고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들은 다음의 표에서와 같이 이집트의 신들에 대한 폴레믹으로 여겨진다. 출애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곧 이집트의 신들이 허황된 우상에 불과하며 어떠한 힘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앙 | 예고 | 이집트의 신들 | |
1 | 나일강이 피로 변함 | 아침에 경고 | Khunm 강의 수원을 지키는 신 Hapi 나일강의 정령 Osiris 오시리의 혈류 |
2 | 개구리 | 경고 | Heqt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개구리 여신 |
3 | 이 | 경고없음 | Geb 이집트 대지의 신 |
4 | 파리 | 아침에 경고 | Uatchit 이집트 파리의 신 |
5 | 가축 병 | 경고 | Amon, Hathor 소의 남신과 여신 |
6 | 악성종기 | 경고없음 | Serapis, Imhotep, Sekhmet 치유의 남신과 여신 |
7 | 우박 | 아침에 경고 | Nut 하늘의 여신 Isis, Seth 농경의 신 Shu 대기를 관장하는 신 |
8 | 메뚜기 | 경고 | Serapia 메뚜기로부터 이집트를 보호하는 신 |
9 | 암흑 | 경고없음 | Re, Amon-re, Aten, Atum 태양의 신 Thoth 달의 신 |
10 | 장자의 죽음 | 경고없음 | Pharaoh 신의 아들, Horus의 현현 |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나일강에서 시작된 재앙이 땅과 하늘로 옮겨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애굽 창조 신화의 배경이 되는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재앙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전차 부대의 부서진 바퀴
고대 전쟁에서 전차는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핵심적인 전력이었다. 전형적인 '여호와 전쟁' 모티프에서 종종 나타나는 구도는 전차 부대를 소유하지 않은 이스라엘이 적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출애굽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애굽 전차 부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출애굽기 14:25)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는 이집트 문헌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메소포타미아 문헌에서 전차 바퀴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점을 치는 징조 문서가 발견되었다. 전차의 바퀴가 빠지거나 부서지는 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신들의 경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집트 군 역시, 전차 바퀴가 부서지거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들을 대적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 If a City Is Set on a Height: The Akkadian Omen Series Šumma Alu ina Mele Šakin, vol.3; Tablets 41-63 (2017, Eisenbrauns), pp.26-31.
이스라엘과 람세스
Joshua Berman은 출애굽의 역사성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그는 람세스의 군대와 히타이트 군대가 맞붙었던 가데스 전투(기원전 1274년 경) 장면의 묘사와 기록이 출애굽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진영과 매우 유사함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출애굽이 람세스의 전쟁 이야기를 모사한 허구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히브리인들은 람세스의 치적과 유사한 형태로 출애굽 이야기를 재구성함으로 당시 고대 근동 세계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던 람세스의 권위를 격하시키고,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많은 비평적인 입장에 있는 성서학자들은 유일신 신앙의 형성을 포로기 이후로 보고 있지만, 이러한 모티프의 유사성은 이스라엘 백성의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시대를 람세스 2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다시 말해 이러한 이야기의 재가공은 실제 역사 사건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https://mosaicmagazine.com/essay/history-ideas/2015/03/was-there-an-exo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