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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 시대 사이의 연결고리
기독교 태동 시기와 동시대
예루살렘 성전 밖에서의 새로운 신앙적 이상향
성경 본문 역사에 대한 중요한 단서
광야
말씀
공동체
Juma'a Muhammad
Muhammad ed-Dhib
이사야서, 공동체 규율,
하박국 주석서, 감사찬송집,
이사야 사본 일부, 전쟁 문서. 창세기 외경서
Khalil Iskandar Shahin(Kando)
Metropolitan Athanasius Yeshue Samuel
이사야서, 공동체 규율
하박국 주석서, 창세기 외경서
Eleazar Sukenik
감사찬송집, 전쟁 두루마리, 두번째 이사야 두루마리
사본의 고대성을 인식
에세네파와 이 사본을 연결
(Pliny의 기록: 에세네파가 엔게디 근처에서 거주)
Millar Burrows (가운데 우편)
John Trevor, William Brownlee (왼편)
예일대는 어제 팔레스틴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사야서 사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본은 예루살렘의 성마가 시리아 교회에서 발견되었으며, 기원전 1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양피지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이 두루마리의 정체는 예루살렘의 미국 동방 연구소의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이 연구소에서 3개의 다른 고대 히브리어 두루마리들을 검토했는데, 하나는 하박국서 주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파 혹은 수도 공동체, 아마도 에세네의 규율서로 보인다. 세번째 두루마리는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런던의 The Times 기사 (1948. 4. 12.)
뉴욕 타임즈 기사 (1948. 4. 26.)
이 발견은 신구약 성서 연구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며, 신약의 배경과 구약의 본문비평과 해석에 대한 현존하는 모든 연구를 구식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올브라이트,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April, 1948)
ASOR의 사본들 (1950, 1951)
수케닉의 사본들 (1954, 1956)
사무엘 주교가 올린 사본 판매 광고(월스트리트 저널 6월 1일)
안티오쿠스4세의 이집트 원정(170)
프톨레미4세에 대한 승리. 귀환길에 성전 약탈
이집트에 대한 두번째 원정(168)
로마의 견제로 인한 안티오쿠스4세의 퇴각
안티오쿠스4세가 죽었다는 루머, 그리고 반란
안티오쿠스4세의 반란군 진압
제사를 중지시키고, 종교박해
(마카베오상 1:44; 마카베오하 6:1-11)
모디인의 마카비 제사장 가문의 항쟁 시작(167)
유다 마카비가 중심
성전 정화와 재봉헌(하누카) (164)
유다의 죽음이후(161), 그의 동생 요나단이 지도자가 됨
셀레쿠오스 왕조의 내분과 유다의 대제사장 등극
(전통적인 오니아스 가문이 아닌 다른 가문의 대제사장직 시작)
요나단에 의해 축출된 대제사장이 쿰란공동체의 의의교사? (대제사장 목록)
요나단의 죽음과 그의 동생 시몬(대제사장,사령관)의 등극(143)
셀레쿠오스 군대를 몰아내고 하스모니안 왕조의 시작(마카베오상 13:41-42)
(왕이라는 칭호는 40년 뒤(아리스토블루스1세)에 사용됨)
기원전 3세기 이후에 나타남(이집트와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회당들)
초기에는 집에서 기도 (단6:10)
2차 성전 시대 말기부터 회당이 중요하게 여겨짐(테오도투스 회당)
정경화 초기 단계 - 율법과 예언서
제사장 계급이 유대 국가를 통치
페르시아,프톨레미오스,셀레우코스 왕조 시대에 지도자 역할
하스모니안 왕조 - 왕/대제사장
로마시대 - 제사장들의 권력은 헤롯 왕조에 의해 박탈
종교 전통, 경전을 기록하고 계승
성전을 관리하고 제사장들을 보좌
각종 행정 기록을 담당
느헤미야,에스라 - 문지기,성가대,성전봉사자들,제사장들
지혜(חכמה) - 교육의 틀
문해력 - 일부 엘리트 계층에 한정
개별적인 행정/기록 수행
정부의 고위 관료
집회서(38:24– 39:11) - 성전 서기관
신약의 서기관 - 아마도 레위인들
바리새인(Pharisees) < 구별(perushim)
바리새파에 관한 첫 언급(고대사 III,171-173)
(요나단의 시대 161-143)
하시딤(마카베오상 2:42; 7:13; 마카베오하 14:6)의 분파
구전 전승에 대한 강조 (고대사 XIII, 297; cf.갈1:14)
영혼불멸과 부활신앙 (유대전쟁사 II,165)
중립적인 운명론 (유대전쟁사 II,162-165; 고대사 XIII,172)
사두개인(Sadducees) < 사독(Zadok)
국수주의적 성향(고대사 XIV,57)
로마를 등에 업은 헤롯과 대적 (고대사 XIV, 168-176)
문서 전승, 부활 부정
[사해] 서편, 에세네파는 불결한 해안과 충분한 거리를 두고 정착했다. 이들은 온 세상의 이들의 존경을 받는 특별한 이들이었다. 이들 가운데에는 여성이 없었고, 남녀 관계를 완전히 포기했으며, 돈도 가지지 않고, 가진것이라고는 대추야자 나무들 뿐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매일 동일한 수의 사람들이 거듭났다. 오락가락하는 운명에 지친 삶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관습을 받아들인다. 믿기지 않지만 수천세기동안 아무도 출생하지 않은 인종이 존재해 왔다. 그들에게 있어 유익한 것은 과거의 삶에 대한 회개이다. 에세네 아래쪽에는 엔가다[엔게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풍요와 야자수림에 있어서는 예루살렘 다음이었다. 오늘날에 이 곳은 잿더미가 되었다. 여기를 지나면 바위 위에 위치한 마사다 요새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 곳은 아스팔트 호수(사해) 근처에 있다.
물질문화(Material Culture)에 대한 연구
역사학이 기록에 근거하여 과거 역사의 사건의 인과관계에 집중한다면 고고학은 인류의 삶의 흔적을 연구하는 것
역사 기록이 엘리트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고고학은 대중들의 삶에 대한 흔적을 연구할 수 있음
1950년대 쿰란 발굴 책임자
쿰란 지역과 주변 동굴들에서 발견된 사본의 연관성 주장
쿰란 지역에 거주했던 이들을 에세나파와 연관시킴
발굴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출판하지 못하고 사망
그의 죽음 이후 사해 사본 출판이 지연되다가 1991년에 공개
비공개 사본들과 유물들은 예루살렘 록펠러 박물관에 보관